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다함께차차차! 2022. 7. 8. 23:20
반응형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1. 태동기(1960년대)
1960년대는 정부의 경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기초소재 자급화 차원에서 석유화학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때가 바로 정부 주도 하에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터가 다져진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1962~1966년) 동안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경공업을 집중 육성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1차 경제개발기간 동안, 늘어나는 산업용 기초소재의 수입 대체가 최대 현안이었다. 이에 따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1967~1971년)에는 석유화학 산업을 육성시켜 원료수입을 대체한다는 계획이 수립되고 정부 주도의 일괄적인 사업 추진과 적극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석유화학산업이 육성되면 다수의 경공업 제품들은 대부분 국산화가 되기 때문에 석유화학산업의 육성은 곧 경공업의 자급화를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특히, 1964년에 완공된 대한석유공사(現 SK종합화학)의 울산공장 가동으로 원료인 나프타의 국내 자급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산업구조의 고도화 차원에서 섬유, 신발, 플라스틱, 타이어 등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전방산업의 개발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1967년 정부 주도로 울산 지역을 석유화학공단 입지로 선정하고, 1968년 착공에 들어갔다. 이때 당시 울산에 정유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석유공사가 나프타분해 설비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원료 생산(Up-Stream) 부문은 대한석유공사가, 제품 생산(Down-Stream) 부문은 충주비료가 담당하여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한양화학(現 한화케미칼), 동서석유화학, 한국카프로락탐(現 카프로), 한국합성고무(現 금호석유화학), 이수화학, 삼경화성(現 애경유화) 등이 단지에 입주키로 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초기 청사진이 만들어졌다.

 

2. 개발기(1970년대)
1970년대는 제2차 경제개발 계획 초기에 진행된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고, 현재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 석유화학단지 건설 계획이 추진되어 완공되는 시기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본격적인 지평을 연 시기 라고 할 수 있다.

1972년 10월부터 가동된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가동 초기부터 높은 경제성장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수급불균형이 예상되었다. 정부는 석유화학제품의 수요증가에 대비하고, 1980년대의 100억불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원료 자급계획에 따라 울산 기존시설의 확장은 물론, 여수 지역에도 세계적 규모의 제2기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추진하였다. 초기에는 두 개의 연산 30만 톤 규모 나프타분해설비, 그리고 관련 계열 설비를 보유한 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으나, 1차 오일파동으로 인한 전반적인 경기침체, 그리고 한일 간의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대내외 투자환경이 악화되자 1974년 5월에 여수 석유화학단지 건설 계획을 전면 축소, 수정하였다.

구체적으로 3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설비 두 개를 짓는 계획은 35만 톤 규모의 한 개 설비로 축소되었다. 여수단지 건설은 자금조달과 합작선 관계 등의 문제로 사업 착수가 지연되다가 호남에틸렌(現 대림산업)이 1976년 11월에 건설에 착수하여 1979년 말에 완공되었다.

 

◈ 초기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 시설현황

반응형
◈ 여수 석유화학단지 시설규모 변화과정

 

3. 성장기 (1980년대)
1980년대는 울산, 여수단지의 완공으로 석유화학산업의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된 시기이다. 초반에는 오일쇼크로 고전을 겪었지만 ‘석유화학공업육성 법’ 폐지(1986년 6월)로 투자자유화 여건이 조성되면서 훗날 대규모 설비투자로 이어졌다. 국내 석유화학산업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이다. 1979년 말 여수 석유화학단지 완공으로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총 50.5 만 톤으로 증대돼, 세계 15위의 생산국(1982년)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여수 석유화학단지는 가동 초기에 2차 오일쇼크와 유가 급등,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고전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석유화학단지는 공교롭게도 오일쇼크 시점과 비슷하게 완공 되었다. 울산단지가 완공된 직후인 1973년에 1차 오일쇼크가 왔다. 그리고 여수단지가 완공된 직후인 1980년에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제2차 오일쇼크가 왔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여수단지 신설과 울산단지 증설이 완공된지 1년도 채 되지 않고 겪었기 때문에 감가 상각비가 높아져 경영난이 더욱 컸던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1980년대 초에 부진을 겪었지만, 1983년에 접어들 면서 유가 하락과 국내외 경기회복에 힘입어 수요가 회복되었다. 석유화학 시장 전망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또한 공급면에서도 석유화학제품의 수요급증으로 일부 품목은 공급부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고, 오일쇼크를 겪는 동안 세계적으로 설비투자가 둔화되면서 수급이 빡빡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 신규투자의 필요성을 대두시키면서 업계와 정부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또한 그동안 석유화학 부문의 설비투자를 제한하여 온 ‘석유화학공업육성 법’이 1986년 6월에 폐지되면서 투자자유화 여건이 조성되었다. 다수의 기업들이 석유화학 설비투자를 검토하게 되었고, 기존 기업들도 규모화·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면서 훗날 대규모 설비투자로 이어졌다.

 

4. 도약기(1980년대말~1990년대중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석유화학산업 투자 자유화에 따라 울산, 여수 단지 내 기존 설비의 증설과 신규 기업의 진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는 대산단지가 완공되면서 지금의 세 개 석유 화학단지 체제가 구축된 때로, 활발한 설비투자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수출주도형 산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1986년 ‘공업발전법’의 발효로 석유화학 신규투자가 자유화됨에 따라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많은 투자계획이 검토·발효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투자 계획을 ‘석유화학공업발전 민간협의회’에서 조정하도록 하였는데, 기존의 나프타분해설비를 가진 기업과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석유화학기업, 또 신규진출 기업의 이해가 엇갈려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최종 결정은 정부로 넘겨졌다. 1988년 정부는 ‘석유화학공업의 투자지도방안’을 확정, 1990년 이전까지는 나프타분해공장 2기(대한유화,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만 건설하고 폴리올레핀 설비는 신증설 착수를 억제하는 대신, 1990년 이후부터는 투자를 자유화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1989년 대림산업과 유공(現 SK종합화학) 등 기존 업체의 증설이 완성됐고, 1991년에 삼성종합화학(現 한화토탈), LG석유화학(現 LG화 학), 현대석유화학(2003년 6월 現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이 분할 인수), 대한유화의 신규설비가 완공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1988년 50.5만 톤에서 1992년 325.5만 톤으로 5년간 6배 이상 증가하는 빠른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석유화학업계의 대규모 증설이 완료된 1992년, 국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석유화학 전방산업의 내수·수출부진, 그리고 석유화학 공급과잉에 따른 국제가격 폭락이 겹쳐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하게 되었다. 1992년, 1993년 사이 깊은 수렁에 잠겼던 세계 석유화학산업은 1994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회복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반기부터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1995년부터 또 한 번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1994년 하반기부터 대부분의 석유화학제품과 전방산업(특히, 가전, 자동차, 합성섬유)의 수출이 활기를 되찾음에 따라 공급부족이 표면 화되기 시작하여 다시 한번 적극적인 설비투자가 진행되었다. 또한 정부에 서도 수급안정화 대책으로 1992년 3월에 제정한 ‘석유화학공업의 투자합리 화 방안’을 1995년 말에 폐지함으로써 석유화학산업의 신증설은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1996년 기준으로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434만 톤으로 늘어났고,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  에틸렌 생산기업 변천 및 생산능력 추이

 

5. 구조조정기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시기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수급구조가 수출주도형으로 자리를 굳힌 시기이다. 대내적으로는 국내 수요성장 둔화, 대외적으로는 중동의 부상과 개도국의 활발한 설비투자, 선진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체질 개선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1997년 현대석유화학의 제2기 나프타분해설비(에틸렌기준 58만 톤)가 완 공된 직후, 외환위기와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 국내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 되어 투자액이 대폭 감소하고, 검토되던 신증설 계획은 대부분 연기, 취소 되었고, 기존 설비의 증설 수준의 설비투자가 진행되었다. 국내 석유화학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수요성장이 둔화되는 한편,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중동의 부상,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의 경쟁 심화 등 경영여건의 변화를 겪으면서 업계에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전략 마련이 절실했다.

이를 위해 업체 간 통폐합을 통해 기업의 대형화를 모색하고, 경쟁기업 간 사업교환 및 품목별 통합을 통한 기업 규모의 대형화·전문화를 추진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역사는 약 50여 년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높은 경제성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빠른 성장을 달성하였고, 수출 효자 산업으로써 또 국내 경제성장을 견인한 중추 산업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 규모는 에틸렌 기준 850만톤으로 미국, 중국, 사우디에 이어 세계 4위 생산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국내경제에서 석유화학산업은 2013년 생산액이 약 110조원으로 제조업 생산액의 7.4%를 점유하여 자동차, 석유에 이어 3위의 생산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한 교역에 있어서는 2014년 수출 482억불로 전체 수출의 8.4%(제조업 5위) 를 차지하며 318억불의 무역 흑자를 달성했다.
반응형
◈  국내 석유화학단지 현황

 

◈  국내 석유화학제품 계통도(총괄)

 

◈  울산석유화학단지 석유화학제품 계통도

 

◈  여수석유화학단지 석유화학제품 계통도

 

◈  대산석유화학단지 석유화학제품 계통도

 

◈  기타 지역 석유화학단지 생산 석유화학제품

< 참 고 내 용 >

2022.07.08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2022.07.08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세계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2022.07.08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석유화학제품의 개발 역사 스토리

2022.07.07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석유화학산업의 원료와 제조공정

2022.07.07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석유화학산업의 특징

2022.07.07 - [시험정보/화학공학 자료] - 주요 석유화학 제품 정보 안내

출처 : 한국석유화학협회(석유화학으로 만드는 세상)

반응형